명복은 빌지 않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말이다. 명복(冥福)은 저승의 행복이다. 이승의 삶이 끝나면 저승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불교적 세계관에서 나온 개념이다. 사후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은 어느 종교나 대체로 비슷하지만, 불교는 독특한 점이 있다. 다른 종교에서는 생전의 행위와 신앙이 천국행과 지옥행을 결정한다. 따라서 사람이 죽고나서 명복을 빌어봐야 부질없는 짓이다. 반면 불교에서는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명복을 빌어주면 아귀지옥에 떨어져 마땅한 악인도 극락정토에 태어날 수 있다. 명복을 비는 게 효과가 있는 종교는 불교뿐이다.

불교의 3대 의례는 모두 명복을 비는 의식이다. 망자의 명복을 빌며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영산재(靈山齋), 명복을 빌어줄 이 없는 원혼을 위한 수륙재(水陸齋), 생전에 저승 시왕에게 미리 명복을 빌어두는 예수재(豫修齋)이다. 모두 사람이 죽으면 열 곳의 지옥을 거치며 열 명의 재판관에게 심판을 받는다는 시왕사상의 산물이다. 영화 <신과 함께>를 보면 이해가 빠르다.

다만 영화와 달리 저승의 재판을 관할하는 시왕은 공평하고 정의로운 존재가 아니다. 시왕은 감정적이고 편파적이다. 망자가 생전에 시왕에게 공양을 올린 적이 있으면 악행을 저질렀더라도 눈감아주고, 아무리 착하게 살았어도 공양을 올리지 않았거나 명복을 빌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지옥에 떨어뜨리기도 한다. 따라서 망자를 위해서나 자신을 위해서나 부지런히 절에 가서 불공을 드려야 한다. 승려들도 먹고살아야 하니 너무 탓할 것은 없다. 교황도 면죄부를 팔아먹지 않았던가.

그러므로 불교적 이념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절을 짓고 탑을 세우고 불경을 간행하고 불공을 드린다. 숭유억불을 표방한 조선 왕실도 초기에는 작고한 왕실 어른들의 명복을 빈다는 명분으로 불사를 벌이곤 했다. 그런데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명복이라는 단어는 조선 초기 이후 깨끗이 자취를 감추었다. 성리학이 지배 이념으로 자리 잡은 결과다. 명복을 빈다는 말을 애도의 표현으로 사용한 흔적도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명복을 빈다가 애도의 표현으로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다.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관용적인 표현이었다. 이제는 우리도 종교에 관계없이 쓰곤 한다. 성당의 신부님도, 교회의 목사님도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명복을 빕니다라며 애도한다. 이 밖에 좋은 곳에 다시 태어나기를’ ‘좋은 곳으로 가기를이라는 애도 표현 역시 불교적 윤회관의 소산이지만 거부감 없이 쓰이고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염원하면 망자가 행복을 누린다는 명복의 관념이 우리의 정서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다. 서구 종교의 천당·지옥 개념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 것도 그 덕택이다. 그러니 종교가 다르다고 명복이라는 말을 쓰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본디 명복은 부조리한 현실의 산물이다. 부조리한 현실로 고통받다 죽는 사람이 있으면 살아 있는 사람들은 슬픔과 분노를 느낀다. 이는 사회 변혁의 요구로 바뀌어 체제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다. 지배층으로서는 간과할 수 없는 위험이다. 명복을 비는 의례는 그 위험을 안전한 방법으로 해소한다. 현실의 고통은 전생의 업보이며, 공정한 판결은 사후에 이루어지니 순응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 결과, 사람들은 내세의 극락왕생을 한 가닥 위안으로 삼고 부조리한 현실을 체념했다. 명복을 비는 이유는 내세의 지옥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지옥 같은 현실을 잊기 위해서다.

지옥 같은 현실의 희생자는 지금도 존재한다. 입주민의 갑질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비원,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가방에 갇혀 죽은 아홉 살 소년, 내세에 지옥이 있다 한들 이보다 더할까. 이들의 비극적인 죽음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명복을 빌었다. 약자의 죽음을 진정으로 애도하는 순수한 마음의 발로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명복을 비는 것으로 끝이라면 비극은 반복된다. 그들의 죽음에 쏟아지는 관심만큼 그들의 삶에 관심을 보인다면 또 다른 비극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죽은 자의 명복을 빌기보다는 산 자의 행복을 위해 뭐든 해야 하는 것 아닐까.

-경향신문, 2020.06.18.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 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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