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후] 미륵사지 석탑부터 경복궁까지..'시멘트' 복원의 흑역사

1910년대 미륵사지 석탑과 2018년의 경복궁 흥복전


경복궁 복원 공사에 시멘트가 사용됐다는 KBS의 연속 보도 후 문화재 업계 관계자들로부터 여러 제보 메일을 받았다. 현재 진행 중인 전국의 여러 문화재 복원 현장에서 시멘트가 무분별하게 사용된다는 내용이다. 그런데, 시멘트는 문화재 공사에서 절대 쓰여서는 안 될 '나쁜 재료'일까. 무작정 비판하기에 앞서 역사적 맥락과 국내·해외 기준 등을 따져볼 필요는 있다. 우선 과거 사례부터 살펴보자.

1910년 겨울, 전북 익산에서 도쿄 제국대학 교수 세키노 다다시가 붕괴 직전에 놓인 석탑 하나를 확인했다.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석탑인 미륵사지 석탑. 9층으로 추정되는 원형은 6층까지만 남고 구조적으로 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긴급 보수에 들어간 조선총독부는 콘크리트 시멘트 185톤을 석탑 뒤편에 덧바른다.

현대적인 의미의 시멘트는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개발돼 당시만 해도 고가의 최신 재료였다. 형체가 흉물스럽기는 해도 조선총독부 입장에선 나름 최선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콘크리트는 탄산칼슘 등의 성분 때문에 백화 현상과 풍화 작용을 촉진하는 약점이 있다. 석탑 붕괴라는 최악의 결과는 막을 수 있었지만 문화재 훼손은 감수해야만 했던, 세부적인면에선 아쉬운 보수였다.

일제가 보수한 미륵사지 석탑의 1990년대 모습

해방 후 문화재 복원이 가장 적극적으로 이뤄진 때는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시기다. 민족 주체성을 기치로 내세운 박 전 대통령은 불국사·석굴암 등 대형 문화재 복원 사업을 다수 추진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9개월 만에 복원 공사를 마친 광화문이다. 일제강점기 경복궁 동문 쪽으로 옮겨진 광화문은 한국 전쟁 때 2층 누각이 모두 불타버린 상태였다. 원형에 대한 연구·자료가 거의 없던 시절, 박 전 대통령은 광화문을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한다는 방침을 정한다.

당시 콘크리트는 산업화와 경제 성장의 상징이었다. '콘크리트 광화문'은 민족중흥과 조국 근대화를 시각적으로 나타내는 정치적 표상이었다. 196812, 박 전 대통령은 광화문 준공식에서 "천 년을 지탱할 것이다"라고 외친다. 그러나 준공 6개월 만에 균열이 생겨 부실 공사 논란이 일었고, 2006년 광화문 제자리 찾기 사업으로 콘크리트 광화문은 완전히 철거됐다.

콘크리트 광화문이 세워진 지 반세기가 지났다. 권력의 하명 기관이었던 문화재관리국은 문화재청으로 승격돼 정책의 독립성을 인정받는다. 문화재를 바라보는 시민 의식도 성장했다. 현대식 공법과 재료를 이용한 보수·복원보다 전통 재료와 선조들의 방식을 따르자는 주장들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겉치장과 속도에만 치중하는 후진적 사고는 여전하다.

지난해 경복궁 흥복전 복원 과정에서 벽체와 지붕 등에 백시멘트가 배합된 재료가 쓰였다. 복원 지침에 해당하는 문화재수리표준시방서는 벽체와 지붕에 진흙과 석회, 여물 등 천연 재료만 쓰도록 정해두고 있다. 문화재청은 시멘트 시공 사실을 전혀 몰랐다가 문제가 불거지자 뒤늦게 재공사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시공업체에 대해선 "고의성이 없다"며 아무런 행정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문화재청은 KBS의 보도 뒤 12"문화재적 가치가 훼손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전통재료의 성능을 보완하기 위해 시멘트를 쓰는 것"이란 내용의 해명자료를 냈다. 그러면서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복원에도 시멘트가 쓰였다는 설명을 붙였다. 석조 구조물인 앙코르 유적이 왜 목조 건축물인 경복궁과 비교되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문화재청은 시멘트가 문화재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 재료라고 보는 것이다. 이러한 문화재청의 생각이 국제적 기준에 맞는지 따져보자.

문화재 복원에서 현대 재료를 쓸 수 있는가에 대한 논의는 20세기 초부터 활발히 이뤄졌다. 최초의 결과물은 1931년 국제박물관사무소(IMO) 주최로 그리스 아테네에 24개국 전문가들이 모여 제정한 '아테네 헌장(Athens Charter)'이다. 당시 학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던 이탈리아의 건축가 구스타보 죠반노니는 역사적 기념물을 보수·보강할 때 철근 콘크리트를 사용할 것을 권고했다. 이때만 해도 현대적 재료·공법이 문화재의 진정성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고에 대한 반성이 이뤄진다. 1964년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61개국에서 온 학자들과 유네스코 관계자들이 모여 치열한 토론 끝에 '베니스 헌장(Venice Charter)'을 채택한다. 16개 조항으로 되어 있는 이 헌장에서 주목할 건 제10조이다. 전통 기법이 부적절하다고 판명될 경우 기념물의 보강은 현대 기법을 이용해도 되지만, 자료와 경험으로 반드시 증명된 것이어야 한다, 현대적 재료·공법을 무분별하게 사용할 것이 아니라 제한적으로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준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엄격해지는 경향을 보인다. 1999년 멕시코에서 열린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 총회에서 채택된 '역사적 목구조물 보존을 위한 원칙'을 보자. 5번째 조항은 '수리와 복원은 전통적인 방법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9번째 조항은 여기서 더 나아가 "공구나 기계의 사용을 포함한 장인의 기법과 건축 기술은 가능하다면 원래 사용된 것에 상응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문화재 복원 공사 현장에서 전동 공구와 대형 기계를 쓰는 것조차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 것이다. 최종덕 국립문화재연구소장은 이러한 기준에 비춰 경복궁 복원에 외국산 소나무를 쓰고 현대식 기와, 인공수지를 사용한 것을 논문을 통해 비판한 바 있다. (ICOMOS 건축 문화재 보존원칙을 통해 살펴본 경복궁 흥례문 재건축과 근정전 수리의 문제점에 대한 연구, 2008)

시멘트가 문화재적 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는 문화재청의 생각은 수십 년 전 만들어진 아테네 헌장과 베니스 헌장 사이 어딘가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베니스 헌장 10조에서 규정한 '전통 기법이 부적절할 경우'를 자의적으로 확대 해석해, 현대식 공법 사용의 정당성을 여기서 찾는 듯하다.

문화재청 입장에선 당연히 전통 재료나 방식을 따르기 어렵다. 3~4년으로 정해진 짧은 공사 기간에서 전통 기법을 연구하거나 개발할 여유는 없으니까. 시멘트를 쓰더라도 일단 하자 없이 완성을 시켜놓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5년 전 숭례문 부실 복원 사태를 겪으며 문화재청이 얻은 교훈이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대형 쇼핑몰이나 초고층 빌딩을 짓는 현장에서나 적용되는 논리다.

그 누구도 경복궁 복원을 재촉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제모습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옛 모습에 충실한 문화재를 보고 싶을 것이다. 누군가의 임기나 정해진 사업 기간을 맞추기 위해 경복궁이 날림으로 지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문화재란 관광 자원이기 이전에 후대에 남길 역사적 증거이기 때문이다.

-KBS, 2019.01.17. 장혁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