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제 얘기 들어주세요 사랑방


아부지, 여기 햄버거랑 커피 있으니 어서 드세요. 마트 빵집에서 햄버거를 사는데 아주머니가 데워 주랴고 물어봐서 잠시 멈칫했답니다. 그래 날도 찬데 따듯한 게 좋겠다 싶어서 데워왔네요. 생전에 커피랑 햄버거를 좋아하셔서 사 왔습니다. 엄마도 햄버거 좋아하신다고요? 예 알지요. 이따 가다가 엄마 드실 것도 하나 사갈게요.

엄마는 점점 건강을 잃어갑니다. 걷는 게 더 힘들어지고 귀도 어두워집니다. 평소대로 말을 하면, 너는 왜 그렇게 작게 말하냐고 하시고 크게 말하면, 맨날 소리만 지른다고 뭐라 하십니다. 집에서 엄마한테 소리를 자주 지릅니다. 잘 들으시라고 크게 말할 때도 있지만, 짜증 섞어 질러대는 경우가 더 많네요.

아버지 기억하시나요. 여기 모시고 얼마 뒤, 묘소 앞에 무릎 꿇고 제가 뭐라고 했던가요. 아버지 살아 계실 때 툭하면 소리 지르고 짜증 내고 그래서 죄송하다고, 엄마한테는 그러지 않고 잘 모시겠다고 제 입으로 말했습니다. 진짜 그러려고 했습니다.

거짓말이 돼 버렸네요. 아버지에게 그랬듯, 어머니에게도 소리만 질러댑니다. 온종일 홀로 계시던 어머니는 퇴근한 저에게 무슨 말이든 하고 싶어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듣지 않고 방으로 들어가 버립니다. 너무 시시콜콜한 이야기, 자잘한 잔소리, 1분이면 될 것을 서론만 10분 이상 끌어가는 이야기, 사실 어머니 말씀이 대개 그래요. 아들은 중간에 말을 끊고 결론만!”을 외치기 일쑤입니다.

그래도 10여 분만 투자해서 들어드리면 될 것을 그조차 못하고 사네요. 남들은 힘든 일도 잘들 해내는데, 저는 쉬운 일도 못 해냅니다. 어머니는 왜 쟤가 늙어가면서 점점 못돼지냐한탄하십니다. 앞으로 어머니도 아버지 곁으로 가시겠지요. 그러면 또 저는 얼마나 많은 후회를 쏟아내게 될까요. 여기 나뭇가지도 많은데, 할 수만 있다면 아버지에게 회초리라도 맡고 싶습니다.

다행히 애들 애미가 엄마한테 잘하는 편입니다. 잔소리도 웃으면서 들어주고 같이 드라마 보면서 얘기도 잘해요. “내가 애미 보고 산다.” 저에게 불만일 때마다 어머니가 하시는 말입니다. 그런데요 아버지한테만 하는 얘긴데, 애미가 점점 엄마를 닮아갑니다. 좋은 점을 닮는 게 아니라 나쁜 점만 닮아요. 걱정입니다.

손주 녀석들 궁금하시죠. 큰애는 방송국 잘 다니고 있고요, 입대한 작은애는 며칠 전에 훈련소 생활을 마쳤어요. 면회 갔었는데 어머니도 같이 갔습니다. 군복 입은 손주 품에 안겨 우시더군요. 저도 살짝 눈물이 나려고 하데요. 큰놈 군대 보내봐서 작은놈 때는 안 그럴 줄 알았는데, 군대라는 데가 가슴을 짜르르하게 만드는 곳인 모양입니다.

학교에서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 효와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그래서 부모님 역사를 써오라는 숙제도 내줬습니다. 그걸 읽으며 울컥했던 글이 두 편 있어요. 한 아이는 가난 때문에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아버지의 역사를 썼고, 한 아이는 공장 작업 중 손가락 4개를 잃은 아버지의 역사를 썼습니다. 그런데 창피함은커녕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자부심을 담뿍 담았더라구요. 글 일부 내용을 학급 친구들에게 읽어줘도 좋으냐고 했더니, 망설임 없이 그러라고 하더군요.

아이들 글을 읽으며 저는 아버지를 떠올렸습니다. 어릴 적에 너무 술을 많이 드시던 아버지를 창피하게 여긴 적이 있습니다. 그게 뭐 창피한 일이라고 그랬을까요. 말은 못했지만, 아이들에게 부끄러웠습니다. 학생들에게 언행과 마음가짐에서 모범이 돼야 할 선생이라는 사람이 이러니 큰일입니다. 불효자가 효자들에게 효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일일이 말할 수 없지만, 아버지를 떠올릴 때마다 후회되는 게 참 많습니다. 평생 품고 가야 할 아픔입니다. 어머니에게는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 마음뿐이네요. 자식은 그냥 죄인입니다. 줄지어 날아가는 저 새들이 뭐라고 합니다. 아버지에게 드리는 인사인가요. 아니 저에게 내리는 충고 같습니다.

, 오늘은 아버지에게 긴 넋두리를 늘어놨네요.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다음에 올 때는 뭘 사다 드릴까요?

 


덧글

  • 재민 2016/12/04 14:47 # 답글

    ㅠㅠ
  • 나무 2016/12/04 17:08 #

    고맙습니다. 재민님.
  • 한완식 2016/12/10 07:54 # 삭제 답글

    우리집 이야기랑 비슷하네.부모님은 형이 모시고 있지만 어쩌다 찾아뵈면 뭐 그리 궁금한게 많으신지.살아계실때 잘 해드리려해도 마음만.
    그래서 나는 약으로 때운다.
  • 나무 2016/12/11 16:49 # 답글

    너는 때울 약이 있어서 좋겠다.
    부모님은 물론 형님 내외에게도 잘해드려라. ^^
  • 글쟁이 2020/01/03 07:41 # 삭제 답글

    이 글 님이 쓴 썼나요? 어디서 본 거 같아서요.
    http://nobody99.egloos.com/1183465
    출처가 없어서
  • 나무 2020/01/03 13:26 #

    글쟁이님^^
    숨어있는 제 블로그를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제가 쓴 글 맞습니다.
    옮겨온 글만 출처를 밝힙니다.
    nobody99라는 분이 제글을 그대로 옮겨 가셨군요.
    정말 출처도 밝히지 않고.ㅠㅠ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