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술 익는 마을에 볕이 들까 소금창고

-경향신문, 2018.09.15., 이종섭·최인진·박용근·박미라·백경열·권순재 기자

삼국시대 우리의 양조기술은 주변 국가에 비해 월등해서 중국과 일본에도 전수됐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이 280~289년 사이에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기록한 <삼국지 위서 동이전>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술 등 발효식품을 잘 만들었다고 적혀 있다. 중국 송나라의 문인이자 정치가인 이방이 983년에 편찬한 백과사전 <태평어람>에는 장쑤(江蘇)성의 명주인 곡아주가 고구려에서 유래한 것으로 돼 있다. 일본의 고문서 <고사기>에는 술을 잘 빚었던 백제의 인번이 일본의 15대 왕 오진(應神) 때 누룩을 이용한 양조기술을 전수한 것으로 나온다.

조선시대는 가장 찬란한 술 문화를 자랑했다. 고려시대부터 왕실에서만 마시던 증류주가 일반에도 전파됐고, 일본이나 중국으로 수출되기도 했다. 가양주(집에서 담근 술) 문화가 활성화됐고, 집안마다 다양한 술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우리 전통주는 뒤틀리는 운명을 맞았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는 우리 민족문화 말살 작업을 본격화했다. 전통주도 그 대상이었다. 일제는 조선에 대한 통치 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1916년 강화된 주세령을 발효했다. 이때부터 가양주 제조는 면허제로 변경됐지만 사실상 금지된 것이었다. 가양주는 타인에게 양도하거나 판매할 수 없었고, 술 제조자가 사망하면 상속인은 술을 제조할 수 없다는 게 주세령의 내용이었다.

이후 술은 일제의 통제하에 제조돼 품질과 규격 등이 단일화됐다. 191630만명이 넘었던 가양주 제조자는 193010명으로 감소했다. 광복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전통주는 더 자취를 감췄다. 이어 1960년대 식량난으로 탁·약주 제조에 쌀 사용이 금지되면서 술은 밀가루 막걸리와 소주로 단순화됐다. 현재는 쌀을 이용한 전통주 제조는 가능해졌지만 이미 대량 생산되는 희석식 소주 등에 밀리고 주류 유통구조까지 대기업들이 지배하면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모양새다.

통계청이 지난 4월 발표한 국내 주류 소비량 통계를 보면, 지난해 소주 국내 소비량은 13090002010년 대비 147385(12.7%) 늘었다. 반면 막걸리는 지난해 374692010년보다 47922(-12.9%) 줄었다. 2016년 기준으로 탁주·약주·청주·과실주·증류식소주 등 전통주 7개 주종은 8788억원어치 출고돼 전체 주류의 9.5%에 불과했다.

정부는 2010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다양한 지원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전통주 활성화는 더딘 걸음이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전통주 생산업체 대부분이 영세한 규모여서 대기업이 생산하는 소주나 맥주처럼 홍보비용을 지출하기 어렵고 유통구조도 상대적으로 불리하다전통주의 종류별 인지도를 끌어올리는 데 마케팅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고려의 개국공신 복지겸은 태조 왕건에게서 300(594)의 땅을 하사받아 면천(지금의 충남 당진시 면천면)에서 여생을 보낸다. 그가 어느날 이름 모를 병을 얻게 되자 딸 영랑은 백일기도를 올린 끝에 꿈에서 진달래꽃으로 술을 빚어 드리면 병을 고칠 수 있다는 신선의 계시를 받는다. 영랑은 그 길로 달려가 진달래꽃을 따다 찹쌀과 섞은 백일주를 빚어 아버지에게 올렸고, 복지겸은 백약이 무효하던 병을 고치게 된다.

효심이 깃든 술로 알려지며 천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면천두견주이야기다. 이 술은 지난 427일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때 만찬주로 사용됐기 때문이다. 이후 평화주라는 별칭을 얻은 면천두견주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3개월간 품절 사태를 빚는 인기를 누렸다. 김현길 면천두견주보존회장은 술의 원료인 진달래꽃이 한라산에서부터 백두산까지 남과 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꽃이라 통일을 염원하고 상징하는 데 제격이라는 점이 만찬주 선정 배경이 된 것으로 안다북한에서도 민족의 정서가 어린 진달래꽃을 좋아한다는 얘길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통일주가 되기까지 면천두견주가 천년의 전통을 간직해온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일한 기능보유자였던 박승규씨가 2001년 세상을 떠나면서 계승자가 없었던 탓에 면천두견주는 한동안 맥을 잇지 못했다. 면천의 마을 주민들이 보존회를 결성해 기술보유단체로 인정받고 다시 두견주를 생산하기까지는 6년의 시간이 걸렸다.

짧게는 수백년에서 길게는 천년 이상 역사를 지닌 전통주들이 전국에서 명맥을 잇고 있다. 다양한 역사·지리적 배경과 유례를 알고 감칠맛을 더해주는 음식과 함께 전국 8도 각지에서 생산되는 우리의 전통주를 즐긴다면 그 맛과 향의 깊이도 더해질 법하다.

지난 4월 남북정상회담 당시 충남 당진의 면천두견주와 함께 또 다른 만찬주로 주목받은 술이 있다. 경기 김포시에서 생산되는 문배술이다. 문배술은 본래 평안도에서 유래돼 고려시대부터 천년을 이어온 술로 알려져 있지만 지금은 경기도를 대표하는 명주가 됐다. 이 술은 이름에서부터 그 맛과 향을 담고 있다. 문배는 들에서 자라는 야생 배다. 술에서 문배향이 난다 하여 붙인 이름이지만 제조 과정에 배는 사용되지 않는다. 우리 전통주 중 유일하게 잡곡(·수수)을 증류해 만든다. 누룩을 띄워 밑술이 만들어지면 메조를 넣고 발효시킨 뒤 수수밥을 넣고 열흘이 지나 소주를 내리는 과정을 거친다. 증류한 술은 바로 마시지 않고 밀봉해 1년간 숙성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문배술은 알코올 농도가 40도나 되는 독주지만, 우아하고 그윽한 과실류의 꽃에서 느껴지는 상큼하고 농밀한 향이 입안 가득 긴 여운으로 남아 쉬이 입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최근에는 23~25도의 저도수로도 출시됐다. 쇠고기 안심구이가 곁들이기 좋은 음식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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