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부실한 과거청산’…53년 덮어놨던 ‘숙제’ 수면 위로 신문에서 퍼온 역사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30일 판결은 한·일 양국이 과거사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채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로 미봉하고 국교를 정상화한 부실한 과거청산의 후유증이 53년 만에 수면 위로 등장했음을 의미한다.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의 개인청구권을 인정하고 일본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손해배상을 하도록 한 판결은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배는 불법이라는 헌법적 가치에 근거를 두고 있다. 판결문은 일본 정부의 한반도에 대한 불법적인 식민지배 및 침략전쟁의 수행과 직결된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인 불법행위를 전제로 하는 강제동원 피해자의 일본 기업에 대한 위자료청구권으로서 청구권협정의 적용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적시했다. 즉 일본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며 강제동원도 불법에 해당하므로 당연히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판결의 기본 뼈대다.

하지만 일본은 식민지배를 불법이라고 인정한 적이 없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은 양측 인식 차이를 해소하지 않고 1910년 강제병합조약 등에 대해 이미 무효임을 확인한다는 애매한 표현으로 각자 유리하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겼다. 이 표현을 근거로 한국은 식민지배 자체가 무효이며 불법이라고 간주하지만, 일본은 식민지배 당시에는 합법이었으나 기본조약을 체결한 1965년 시점에 무효가 됐다고 주장한다. 일본은 이를 근거로 조선이 합법적인 조약에 의해 합방된 상태에서 전시국민동원령에 따라 합법적으로 자국민을 동원한 것이므로 불법이 아니라는 논리를 편다.

·일 국교정상화 당시 식민지배의 불법성 문제를 어정쩡하게 봉합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1951년 제2차 세계대전 종식을 위해 미국 등 연합국 48개국과 일본 사이에 체결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한국이 참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이 조약에서 전승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고 일제의 식민지배와 전쟁에 대한 배상을 받을 길도 없어졌다. 결국 샌프란시스코 조약의 후속조치인 한일청구권협정을 통해 재정적 채권·채무 관계를 정리하는 것으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를 덮을 수밖에 없었다.

당시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조약에서 드러난 것처럼 일본에 비상식적으로 관대한 정책을 시행한 것은 패망국 일본을 부흥시켜 냉전체제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미국의 조급하고 부실한 전후 처리로 한·일관계의 중요한 부분들이 해결되지 못한 채 역사의 페이지가 넘겨진 것이다.

·일 과거사 문제가 불합리하고 불완전하게 정리됐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1965년 한일기본조약 체결 이후 양국관계를 50년 이상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안보·경제적 상호 필요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냉전이 끝나고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자 1965년 체제는 더 이상 유효성을 갖기 어렵게 됐다. 1990년대 이후 한·일 갈등이 더욱 심해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식민지배 불법성 여부에 대한 확실한 판단을 한·일 양국에 요구하고 있다. 과거사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의 아시아정책에 밀려 국교를 정상화하고 안보·경제적 필요성에 의해 양국관계가 이어져온 1965년 체제가 한계에 봉착했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 이번 대법원 판결이다. 정부 소식통은 ·일 모두에게 무거운 외교적 과제를 던져준 것이라면서 “1965년 체제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한·일 협력모델을 찾는 것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018.10.31.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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