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에서 고려 중성 방어시설 치(雉) 첫 발견 사랑방

승인 2018-12-06 10:32:21 | 윤광원 취재본부장

[미디어펜=윤광원 기자] 강화 고려궁지 북동쪽 약 2떨어진 옥림리 주택부지에서 고려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성벽 방어시설 중 하나인 치()가 발견됐다.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한백문화재연구원(원장 서영일)은 국비지원 발굴조사 지역인 강화 옥창돈대 인근 옥림리 부지에서 강화 중성(中城)에 맞닿은 목책 치와 성벽 바깥쪽에 판 물 없는 도랑인 외황(外隍) 유적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이란 해자 중에서도 물을 채우지 않은 방어시설이며, 성벽 안쪽이나 밖이냐에 따라 내황(內隍)과 외황으로 나뉜다.

고려는 몽골 침입을 피해 1232년 강화로 천도한 뒤 1270년까지 머물렀으며, 방어를 위해 궁궐 바깥에 내성(內城), 중성, 외성(外城)을 쌓았다.

강화군 향토유적 제2호인 중성은 흙을 다져 올린 8.1길이 토성으로, 중성에서 치와 외황 유적이 드러나기는 처음이다.

치는 성벽 일부를 바깥으로 돌출시킨 구조물로, 목책 구덩이 9기와 두 겹 외황, 초소가 나타났다.

목책 구덩이는 능선을 따라 한 줄을 이뤘는데, 축조 이후 나무 기둥을 뽑아내기 위해 구덩이를 파낸 뒤 흙으로 메운 것으로 조사됐다.

'고려사절요' 고종 46(1259) 6월 기록에 따르면 몽골은 고려와 종전을 위한 강화협정을 맺으면서 강화도성을 허물라는 조건을 내세웠고, 몽골 관리가 성벽을 파괴하는 과정을 직접 감시했다.

외항은 풍화암반층을 L자형으로 판 뒤 바깥쪽을 돌과 흙을 다져 올린 유적과 U자형으로 파내고 흙을 바깥에 쌓아 올린 유적 두 개가 각각 확인됐다.

특히 신라 토기를 버린 폐기장도 확인돼 신라시대부터 군사 목적의 방어시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연구원은 추정했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