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투어-역사 문화 이야기의 보고, 강화도 사랑방

-매일경제, 입력 : 2019.01.09, 신혜연(헤이컴 대표, 콘텐츠 기획자)

13600만 평의 갯벌이 있는 바다, ‘뫼 산자로 생긴 명당에 앉은 산, 800년간 꾸준히 간척해서 넓혀 놓은 들까지, 산과 바다와 들에서 나는 것들만 먹어도 풍요로운 섬 강화도. 한반도의 중심으로 고조선이 시작된 곳이고, 외세 침입에 대비해 50여 개의 돈대를 쌓고 가장 앞에서 온몸으로 막기도 했던, 굴곡 있는 역사를 지닌 곳이지만 요즘은 곳곳에 극장과 서점, 미술관 등이 들어서 역사 도시에 문화 도시의 이미지를 더하고 있다. 하루 나들이로 가 볼 만한 강화의 소문난 장소들을 소개한다.

강화도는 화문석으로 유명한 곳이라는 초등학교 암기식 정보만 갖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강화에 가는 지인들이 늘었다. 유명한 카페 구경 간다며 우르르 몰려가는 게 신기했고, 강화 출신 함민복 시인의 지인에게 강화의 역사를 듣고 더 궁금해졌다.

강화도 이야기를 여기저기서 듣다 보니 서울에서 지척인데 아이 어릴 적에 갯벌 체험하러 갔다가 조개껍데기만 잔뜩 주워 온 기억만 가물가물했다. 길을 나섰다. 1970년쯤의 모습으로 내 머릿속에 머물던 강화는 겨우 하루 나들이에 2018년으로 시간 이동을 했고, 강화도의 역사·문화적 가치와 풍요로운 자연환경에 눈이 뜨여 시간 날 때마다 자주 가고 싶은 곳이 되었다. 예정은 고인돌과 외규장각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건축적으로 의미 있다는 성공회 성당들을 돌아보고, 젓국갈비라는 묘한 이름의 음식을 먹어 보고 방직 공장을 카페로 만들었다는 조양방직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데 고인돌의 위치를 파악하려고 구글 지도를 열었다가 일이 커졌다. 강화도가 우리나라의 서쪽에 있으니 일몰 풍경이 멋질 거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서쪽 해변을 따라 일몰 조망지가 여러 곳 있었다. 또 조양방직이란 큰 공장이 왜 강화도에 있었을까 궁금해 찾아보니 예전에는 강화에 조양방직 말고도 소창 공장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게다가 강화도에 가겠다고 하니 주위에서 예술 영화만 상영하는 극장이 있다, 세계적 미술가들의 진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이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족욕 체험을 할 수 있는 카페가 있다는 등 속속 제보가 들어왔다. 평생 취재하며 얻은 진리가 하나 있다. 살아 있는 좋은 정보는 늘 대면한 사람의 입에서 나온다는 것, 이 원칙은 이번에도 통했다. 모든 정보를 모아 꼭 가 보고 싶은 곳만 추리니 교동도와 석모도를 빼고 강화도에만 20여 곳이 넘었다. 반나절이면 다 볼 수 있을 것처럼 작아 보이던 강화도에는 결국 다음을 기약해야 할 정도로 가 볼 곳이 너무 많았다.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는 참성단이 있는 강화도는 우리나라 역사의 시작점이자 위기의 순간마다 왕실을 모시고 임시 수도 역할을 해 온 역사의 요충지다. 마니산에서 백두산까지, 또 한라산까지의 거리가 같다는 사실만 봐도 강화도는 명실공히 한반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다. 여행의 시작은 강화역사박물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사적 제137호 강화 부근리 지석묘 앞에 지상 2, 지하 1층의 유리 건물이 들어섰다. 주중 오전의 박물관은 조용하다. 2층 전시실에 먼저 올라가니 구석기 시대의 주먹 도끼부터 청동기 시대의 반달 돌칼 등 선사 시대 유적부터 단군과 세 아들이 힘을 모아 쌓았다는 정족산성과 천제를 올린 마니산 참성대 등 고조선 역사상 중요한 장소에 대한 기록이 전시되어 있다. 세계 거석 문화 중 하나인 선사 시대 고인돌 120여 기가 강화도 전체에 고루 퍼져 있어 고인돌 왕국이라 부를 정도로 고인돌 자료가 많은데, 고인돌을 축조하는 과정을 디오라마로 만들어 이해하기 쉽게 전시해 놓았다. 1층 전시실에는 고려 시대에 몽골의 침략으로 수도를 강화로 옮겨 와 39년간 고려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던 강도江都 시대의 강화와 조선 시대 병자호란과 정묘호란 시 제2 수도였던 강화, 근대의 관문으로서 강화의 모습을 알 수 있는 유물과 모형 등이 전시되어 있다. 아름다운 비색의 고려청자들과 조선 시대 강화성 축조의 기록과 조선 후기 학자들의 큰 흐름을 이룬 강화학파의 기록들이 있다. 정조 때 조선왕조실록의 복제본을 보관했던 정족산 사고와 어람용 의궤를 보관했던 외규장각의 이야기도 여기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서양 강호들이 물밀 듯 들어오던 시대에 조선의 관문을 지켜 온 무관들의 이야기와 장군의 깃발인 수자기’, 광성보 전투 모형 등 유물과 모형, 영상물, 디오라마 등을 활용해 누구라도 쉽게 강화도의 5000년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재미있게 전시해 놓았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나가면 낮은 언덕을 따라 여러 개의 부근리 고인돌군이 있다. 그중 언덕 가운데 2.6m 높이에 너비가 5m가 넘는 덮개돌이 얹힌 지석묘가 가장 대표적인 고인돌이다. 산에서 돌을 채석해 옮겨 와 80톤 가량의 덮개돌을 얹어 지석묘를 만들려면 800여 명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그 고된 노동을 통해 돌을 굴리고 올리면서 그들이 간절히 바란 것은 무엇이었을까? 지금보다 훨씬 거칠었을 자연의 재해로부터, 거대한 짐승들의 침략으로부터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확보해 달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마음을 담으면 못할 일이 없었을 테니. 고인돌 앞에서 선조들의 삶에 대한 진지함이 느껴졌다.

강화역사박물관에서 강화의 역사를 후루룩 살펴본 뒤 강화읍으로 들어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강화읍 투어는 전문 해설사와 함께하는 게 좋다. ‘강화 이야기 투어3인승 친환경 전기 자전거 뒷좌석에 타고 있으면 전문 해설사가 운전해서 강화산성 안의 유적지 코스를 돌면서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프로그램이다. 15분 동네 산책 투어부터 용흥궁에서 성공회강화성당과 고려궁지 등을 다 돌아보는 100분짜리까지 다양하게 있어 사정에 따라 고를 수 있다. 강화도령으로 불린 조선 철종의 드라마틱한 이야기가 담긴 용흥궁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한옥 성당인 성공회강화성당, 고려의 궁이 있던 고려궁지와 조선 왕실 의궤를 보관하던 외규장각, 김구 선생이 머물렀던 김구 방문 고택 등 강화의 역사적 명소들에 얽힌 이야기를 김형식 대표가 차분한 목소리로 들려준다. 고려궁지를 돌아보고 나오는 길목에는 병자호란 때 임금을 지키기 위해 순국한 김상용 순절비 바로 옆에 높은 굴뚝이 하나 있다. 1947년에 설립해 2005년까지 1200여 명의 근로자가 종사했던 국내 굴지의 심도직물 터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다. 굴뚝 옆에는 소창을 생산하는 직조기가 유리 상자 안에 전시되어 섬유공업 도시였던 강화의 전성기를 말해 준다. 강화는 섬이라서 부녀자를 중심으로 수공업이 발달했고, 1920년대에 직기가 들어오면서 면직물과 견직물의 대량 생산이 가능했으며, 1933년에 최초로 근대식 방직 공장인 조양방직이 설립되었다. 그 후 강화에는 수십 개의 방직 공장이 세워져 수출 역군으로 전성기를 맞았으나 2000년대 들어 중국산 면직물 수입 등으로 섬유 산업이 일순간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

길 건너편 평화직물의 염색 공장터를 보수해 만든 소창 체험관에서는 강화의 유구한 직물 역사와 함께 전통 방식으로 생산하는 천연 면직물인 소창을 소개하고 있다. 아기들 기저귀감으로 사랑받았던 소창은 400여 년 전 농가 부녀자들이 부업으로 반포를 만들면서 시작되어 공장형 직물로 대량 생산되면서 강화 경제 발전의 견인차가 되었다. 인견의 등장으로 지금은 11개 공장에서만 소량 생산하는 소창을 강화도 관광 자원으로 부활시킨 곳이 이곳. 소창을 만든 직기들을 전시해 구경뿐 아니라 직접 다뤄 볼 수도 있고, 소창에 탁본하는 체험을 통해 흡수성 좋고 부드러운 소창의 매력을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있다. 근처에는 유명한 조양방직 카페가 있다. 1000에 가까운 공장 건물의 골조를 그대로 살리고, 기계들을 비롯해 1970년대의 일상 소품부터 수입 장식품들을 곳곳에 배치해 거대한 설치 미술품처럼 만들어 카페로 운영하는 곳이다. 만든 지 1년도 안 되어 강화도의 최고 관광지가 되었는데, 기계를 들어낸 곳에 길을 만들고 양쪽으로 의자를 배치해 커피와 빵을 판매한다. 공장 터였기에 땅이 넓고, 천장이 높아 안쪽 벽을 다 부수니 커다란 광장 같은 공간이 만들어진 것. 이색 공간을 찾아 다니는 요즘 젊은 세대의 호응을 얻어 인스타그램에는 조양방직 카페 사진만 수천 장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넓은 카페를 가득 채운 낡고 키치한 장식품만 가득하다. 방직 산업이 발달했던 강화 경제 중흥의 터를 기리거나 모처럼 나온 독특한 공간을 예술적으로 재조명했을 거라는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평일인데 사람이 가득해 시끄러웠고 셀카를 찍는 젊은 커플들과 카메라 촬영 금지임에도 커다란 카메라로 몰래 작품 사진을 찍는 아마추어 사진가들로 가득하다. 대중의 취향을 파악하고 소문난 장소를 체험하는 의도로는 한 번쯤 가 볼 만한 곳.

강화읍에서 오랫동안 젓국갈비를 내는 유명한 식당이다. 손맛 좋은 사장님이 젊어서 하숙집을 운영할 때 어릴 적부터 집에서 먹던 대로 돼지갈비국에 새우젓으로 간을 한 젓국갈비를 끓여 내면 하숙생들이 그릇을 싹 비울 정도로 잘 먹고, 이걸로 식당을 차리시라고 부추기곤 했다고. 실제로 식당을 내고 이 음식을 만들어 팔다가 지인 추천으로 강화군 향토음식발굴대회에서 상을 타면서 유명해졌고 강화도의 대표 음식이 되었다. 원래 고려 시대에 강화로 피난 온 왕에게 올릴 변변한 음식이 없어서 평소에 섬 주민들이 먹던 새우젓국에 돼지갈비를 넣어 끓여 만든 음식이라고 한다.

여행을 하다 보면 가끔은 잘못 들어선 길에서 의외의 감동을 얻기도 한다. 성공회강화성당과 고려궁지, 조양방직 카페 등을 돌아보고 강화읍의 마지막 방문지로 정했던 김구 방문 고택에 가니 겨울철이라 문이 닫혀 있었다. 인터넷 검색도 안 하고 길을 나선 스스로를 탓하며 발길을 돌리다가 문간채쯤 되는 기다란 한옥에 있는 예쁜 가게가 눈에 띄었다. ‘그 여자 그릇, 유림상회그 남자 서점, 소금빛서점’.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인 김구 방문 고택에 구경 왔다가 인연이 되어 강화도에서 살게 된 젊은 부부가 운영하는 서점과 그릇 가게다. 100년 고택의 한 칸을 차지한 소금빛서점은 인문의 향기와 시간의 깊이를 한번에 얻어 그저 동네 서점이라는 부제로는 아쉬운 감이 들 정도로 묵직한 무게감을 가진 서점이 되었다. 책을 하나 골라 들고 의자에 앉으니 작은 공간에 울려 퍼지는 성가가 가슴 깊숙이 파고든다. 대칭으로 자리한 유림상회에는 네덜란드의 전통 그림 기법으로 만든 보렌반트와 폴란드 전통 도자기인 분즐라우 같은 그릇을 주로 판매한다. 통나무로 만든 도마,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호두나무를 깎아 만든 십자가도 예쁘게 포장해 판매하는 등 핸드 메이드 제품들이 그득하다. “서점만 운영해서는 힘들어서 그릇 팔아서 서점 운영에 보탠다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안주인. 서점에 대한 부부의 소신과 애정이 보여 마음 한편이 따뜻해졌다.

강화읍을 등지고 남쪽으로 30분쯤 차를 달려 해든뮤지엄에 도착했다. 해든뮤지엄에서는 지난 3월부터 내년 224일까지 개관 5주년 기념으로 샤갈-신비로운 색채의 마술사전시가 열리고 있다. 샤갈의 오리지널 작품 4점과 판화 53, 샤갈이 기획해서 제작한 화집 2권을 전시 중이다. 서울도 아닌 강화에서 샤갈의 진품을 이렇게 많이 만날 줄이야. 모두 박춘순 관장의 소장품으로 이런 기획전을 열었다고 한다. 샤갈이 즐겨 사용하던 성경, 신화, 고전 문학의 소재들을 샤갈 특유의 유려한 스케치와 화려한 색감으로 표현한 작품에는 샤갈의 고향 비텝스크의 기억과 그가 사랑한 도시 파리의 모습이 담겨 있다. 전시장 중앙에는 중정이 있는데 그 안에 베르나르 브네Bernar Venet두 개의 비결정적 선Two Indeterminate Lines’이 있다. 간결한 건축물 안에서 제자리를 제대로 찾아 앉은 브네의 작품은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샤갈의 전시를 보고 나오며 한참 들떠 있는데 들어올 때는 두 벽 사이의 좁은 길로 들어오느라 못 봤던 넓은 잔디밭이 나타났고, 큰 청동 조각 두 점이 놓여 있었다. 뭔가 착시 현상 같은 느낌이 들어 보니 건물 외관이 거울이었고, 청동 조각은 폴란드 출신 조각가 이고르 미토라이Igor Mitoraj이카루스의 토르소Torso di Ikaro’였다. 작품은 하나인데 거울로 인해 두 개로 보인 듯. 이고르의 이카루스 특징 중 하나인 등에 작게 새겨진 메두사가 거울 덕분에 한눈에 잘 보였다. 배대용 건축가의 안목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해든뮤지엄에서 멀지 않은 동검도에는 예술 영화만 상영하는 DRFA365예술극장이 있다. 섬 속의 섬 동검도에 35석의 작은 극장을 운영하는 이는 영화감독이자 시나리오 라이터인 조나단 유. ‘디지털 리마스터링 필름 아카이브의 첫 글자를 따고 일년 365일 동안 천국에 있는 것처럼’ ‘보이콰이어’ ‘빛의 화가들등 예술 영화만 상영한다는 뜻이다. 홈페이지에 3개월 정도 상영 스케줄이 표시되는데 매진되면 옆에 완전 매진, 절대 요청 금지라는 덧글이 붙을 정도로 철저히 예약 중심으로 운영한다. 영화 상영 시간이 있어서 함박스테이크나 곤드레밥 등 식사 주문도 미리 받고, 영화 관람 후 10인 이상의 단체 관람객을 위한 식사도 가능하다. 무엇보다 언제든 달려가기만 하면 5000만 평의 갯벌이 눈앞에 펼쳐진 동검도 해변에서 고르고 고른 예술 영화를 편안하게 볼 수 있는 극장이 있다는 건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겐 참 고마운 일이다.

정족산성 안에 자리한 전등사 죽림다원에 들러 차를 한 잔 마시려다 대웅보전 공사로 썰렁한 전등사를 나와 서쪽으로 길을 잡다가 소문난 카페 다루지를 찾아갔다. 원래 마을 이름이 달오지인데 발음하기 편한 대로 다루지로 변했다고. 마을 안쪽에 자리한 카페 다루지는 유럽의 전원주택 같은 예쁜 집이다. 산 속에 땅을 돋우고 돌을 쌓아 담을 만들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데, 안에 들어가니 커피부터 빵과 장식까지 모두 핸드 메이드.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농장형 카페다. 남미 여행을 다녀와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된 아빠가 3대째 살던 한옥을 카페로 개조하면서 온실 화원과 테이블 등을 직접 만들었고, 두 딸이 바리스타로 일한다고. 솜씨 좋은 엄마는 천을 이어서 구유에 담을 인형을 만들고, 딸은 맛있는 프렌치토스트와 당근 케이크를 굽는다. 미니 바게트에 달걀과 우유를 입히고 신선한 과일과 마스카포네 치즈를 얹은 프렌치토스트의 비주얼과 맛은 강남 어느 카페의 그것보다 훌륭하다. 큰딸은 프렌치 자수도 잘해서 곳곳에 작품을 걸어 놓았고 가끔 프렌치 자수 클래스도 연다고. 둘째 딸은 그림을 잘 그려서 초크보드에 근사하게 스토리텔링을 해낸다. 카페 한편의 초크보드를 보니 카페 다루지의 브랜딩 스토리가 다 들어 있다. 다루지를 월오지月烏池로 풀었다. ‘달빛 아래 까마귀가 노니는 연못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 카페 아래쪽에 넓은 연못을 만들었는데, 거기 달빛이 비추면 이런 그림이 만들어지나 보다. 이와 함께 스몰 웨딩, 플리 마켓, 파머스 마켓, 농장, 홈 파티, 음악회 등 다루지를 어떻게 운영해 나가는지에 대한 비전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귀엽게 풀어놓았다. 공간 구석구석에 자리한 손맛이 담긴 소품들을 보며 마음이 풀렸는데, 귀엽지만 당찬 포스의 초크보드를 보니 괜히 맘이 든든해졌다. 따뜻하고 옹골찬 가족의 카페, 거리만 가까우면 매일 오고 싶을 정도로 멋진 곳이다.

하루 해가 저물어 간다. 서쪽 하늘이 서서히 노랗게 변하는 것을 보며 서쪽으로 차를 몰았다. 예정 일몰 시간은 오후 515. 시간 여유가 있어서 바다를 보며 족욕할 수 있다는 카페 트라몬토에 들렀다. 트라몬토는 이탈리아 어로 일몰이란 뜻. 언덕 위에 자리한 2층짜리 주택을 개조한 카페의 넓은 유리창을 통해 강화도와 석모도 사이의 바다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해넘이가 정면으로 보이는 것은 아니고, 해질녘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다. 흰 타일을 붙여 만든 소형 족욕탕 4개가 나란히 있어 로즈, 허니, 알로에, 라벤더, 민트를 입힌 솔트 중 하나를 고르면 물에 풀어 풋 스파를 즐길 수 있게 해 준다. 한 사람당 15분에 6000. 2층 창가에 나란히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곳. 일몰 시간에 맞춰 장화리 일몰 조망지로 향했다. 들쭉날쭉한 해안선이 복잡했던 강화도는 고려 시대 때부터 간척을 시작해 지난 800여 년 동안 조금씩 면적을 넓혀 130에 달하는 농경지를 만들어왔다. 26개의 섬을 간척으로 이어 강화도와 교동도, 석모도 등 큰 섬 세 개로 만들어 낸 것. 덕분에 해안선을 따라 곧게 뻗은 도로를 따라가니 넓은 갯벌과 함께 바다를 볼 수 있는 평지가 나왔다. 그곳이 장화리 일몰 조망지다. 해안을 따라 카페와 숙박 업소가 많으나 인위적 시설을 떠나 온전히 일몰을 볼 수 있도록 바닷가에 제방을 쌓아 놓았다. 해질녘이면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사람들이 멀리서 보일 정도로 유명한 일몰 조망지다. 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십여 분 걸어가야 한다. 세계 5대 갯벌에 들어갈 정도로 13000만 평의 갯벌 위를 붉게 물들이며 바다 속으로 해가 서서히 숨어 들어가는 강화의 일몰은 천천히 진행된다. 저 하늘 위에서부터 어스름이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황금빛이 바다 위로 퍼지기 시작한다. 재빨리 자리를 잡고 활활 타오르던 태양이 조금씩 내려앉으며 노란빛의 스펙트럼이 한 단 한 단 아래로 사라져 가는 시간을 즐긴다. 옆에 있는 분은 자녀의 학업과 가족의 건강을 큰소리로 외치며 떨어지는 해에 마음을 얹는다.

대상이 무엇인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원하고 원하면 이루어질 터이니.

해가 떨어지니 사위가 고요하다. 조용한 길을 30분쯤 달리니 멀리 환한 불빛의 초지대교가 보인다. 역사상 외세의 침입이 있을 때마다 첫 관문으로 수성을 위해 제 역할을 했던 초지진 바로 앞이다. 침입 세력의 입장에서는 초지진만 지나면 바로 한양으로 갈 수 있으니 그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을까? 덤덤한 돌 벽에 담긴 그 많은 한과 슬픔을 하룻길에 다 알 수 없겠지만 괜히 근처를 오가며 바다만 바라보게 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