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즐기고 지지자에게 욕먹을 용기 있는 자가 해야 소금창고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된다. 사소한 일에도 전문가의 의견을 신봉하는 사람들도 정치는 아무나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정치는 아무나 하고 있다. 아무나 정치를 해도 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기성정치를 혐오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인물을 쇼핑한다. 그런 정치 소비자의 눈에 안철수는 매력적인 신상()’이었다. 안철수의 상징 자본은 정치권 밖의 명망가라는 데 있었다. 박원순도 마찬가지였다. “정치하려거든 정치하지 마라라는 격언(?)을 증명하는 인물들이다. 정치 경험이 전혀 없는 명망가가 나라를 구해줄 것이라고 믿는 메시아주의는 아주 위험한 반()정치 포퓰리즘이다. 오늘날 정치인은 차고 넘치지만 정치가는 너무나 귀하다. 많은 사람들이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를 제왕적 대통령청와대 정부라고 말하지만 나는 모두 동의하지는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이나 청와대 정부라는 표현은 마치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직도 있는 듯 들리지만, 사실 대통령의 권력은 1970년대 긴급조치 시대를 정점으로 매일매일 시나브로 약화되어 왔다. 어쩌면 이제 대통령의 힘은 권력기관을 포함한 고위 관료에 대한 인사권 정도만 남았을지 모른다. 국회를 지배할 수도, 사법부에 영향을 미칠 수도, 권력기관을 통제할 수도, 언론을 장악할 수도 없다. 청와대 정부라는 비판은 동의할 수 있지만 적어도 제왕적대통령이란 비판에는 동의할 수 없다. 오히려 대통령의 권력이 약화되고 국회와 사법부의 힘은 커진 과두의 상황에서 누구도 결정할 힘은 갖지 못한 채, 상대 정당에 무조건 반대할 정도의 힘만 갖고 있는 비토크라시(Vetocracy)’ 늪이 한국 정치의 핵심적 문제다. 내각제 국가는 의회 다수파가 필연적이어서 어느 쪽으로든 결정할 수 있지만 만성적 여소야대에 시달리는 우리 정치는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처럼 결정할 힘을 잃었다. 한국의 철학을 연구한 일본의 오구라 기조는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라는 책에서 조선 시대 지식인의 유형(선비, 사대부, 양반)으로 오늘날 한국 정치의 부도덕을 신랄하게 비판한 대목에서 놀라운 통찰을 보여주었다. “유교에서는 도덕과 권력과 부는 이상적으로는 삼위일체여야 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삼위일체는 절망적일 정도로 불가능에 가깝다. 왜냐하면 도덕은 권력과 부와 결합되는 순간 부도덕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도덕쟁탈전이 전개된다. 이것은 도덕을 내세워 권력을 잡은 세력이 얼마나 도덕적이지 않은가를 폭로하는 싸움이다.” 정치의 시대를 이끌었던 3김은 오늘날 정치인과 세 가지 점에서 확실히 달랐다. 첫째, 그들은 하나만 같아도 동지로 보는 합목적적 유연함이 있었다.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정치에는 맞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학자, 종교인, 법조인, 언론인, 시민운동을 하는 것이 낫다. 정치가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공산주의 소련과 연합도 할 수 있어야 한다. 김영삼과 김대중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3당 합당‘DJP 연합을 했기 때문이다. 둘째, 그들은 정치를 으로 했다. 목포상고를 나온 호남 출신의 김대중이 1997년 대권 도전 네 번 만에 70이 넘은 나이에 대통령이 되었을 때, 그런 불굴의 의지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처음에는 마키아벨리가 말한 비르투(Virtu·권력의지)’의 힘으로 생각했으나 그게 아니라 정치를 즐겼기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김영삼도 그런 정치인이다. 그들은 국민들에게 꿈과 비전을 제시하고, 동지를 모으고, 당을 만들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선거에서 떨어져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치는 정치를 좋아하는 사람이 해야 한다. 그저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되고 싶을 뿐인 사람은 정치를 하면 안된다. 혼술, 혼밥 하는 사람이 정치를 잘할 수는 없다. 그들은 정치를 머리로 하고, 혼자 한다. 셋째, 그들은 지지자들에게 욕먹을 용기가 있었다. 요즘도 권력에 맞서는 정치인은 꽤 되지만 지지자들에게 욕먹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치인은 찾아보기 힘들다. 권력에 맞서는 것은 작은 용기만 있어도 되지만 지지자들에 맞서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누구나 해도 되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정치다.

-경향신문, 2019.06.01. 박성민 정치컨설턴트

 

 

 


덧글

  • 생기있게 2019/06/18 22:31 # 삭제 답글

    아무나 정치를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아무나 정치를 해도 크게 좌지우지 되지 않은 그런 탄탄한 시스템이 갖춰져 있으면 좋겠다. 유치원생이든 초등학생이든 전국민 누구나 정치를 그저 일상생활로 이야기하고 정치인을 특별한 누군가로 생각하지 않은 그런 아무나 정치를 할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 나무 2019/06/20 23:40 #

    ^^
    글 남겨 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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