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 열사 유해 소금창고

충남 천안시 병천면 유관순 열사 생가의 뒷산 매봉산 중턱에는 열사의 초혼묘가 있다. ‘초혼묘(招魂墓)’는 유 열사의 유해를 모신 무덤이 아니다. 시신이나 유골이 들어 있지 않은 허묘다. 그렇다면 유관순 열사의 유해는 어디에 있을까.

191941일 천안 아우내장터 만세시위를 주동한 유관순은 일본 헌병 수색조에 체포됐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시위 현장에서 죽임을 당했다. 유관순은 징역 3년형을 받고 서대문감옥에 수감됐다. 감옥에서도 유관순은 투쟁을 멈추지 않았다. 192031일에는 옥중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일본 헌병의 고문으로 방광이 터지는 등 후유증이 컸다. 급기야 928일 감옥에서 숨졌다. 그때 나이 19. 1012일 모교 이화학당으로 시신이 운구됐다. 이틀 뒤 정동교회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이태원공동묘지에 안장했다.

1930년대 서울의 인구가 크게 늘자 일제는 대규모 도시 정비에 나섰다. 공동묘지가 포함된 이태원 일대는 주택지로 개발됐다. 1935~1936년 공동묘지의 이장이 진행됐다. 당시 이태원공동묘지의 무덤은 3만기가 넘었다. 그러나 가족이 이장한 유연고 묘는 4778기에 불과했다. 나머지 무연고 묘 28000기는 유해를 한데 모아 화장한 뒤 새로 개장한 망우리 공동묘지에 합장했다. 무연고 묘로 분류됐던 유관순의 유해가 망우리로 이장됐을 것은 불문가지다. 193612월 경성부(지금의 서울시)는 이태원공동묘지의 합장묘를 단장한 뒤 비석을 세웠다. 서울 망우리공원에 서 있는 고색창연한 이태원묘지 무연분묘 합장비가 그것이다.

유관순의 유해가 망우리에 안장됐을 것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망우리공원에는 추모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9월에는 이화여고·유관순열사기념사업회 등이 합장묘 앞에 유관순열사 분묘 합장 표지비를 세웠다. 일제 탄압에 항거해 불꽃 삶을 살다 간 유관순 열사는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에 이어 올 3·1절에는 대한민국장을 추서받았다. 내년이면 유관순 열사 순국 100년이다. 순국 99주기를 맞아 용산 이태원(27)에 이어 천안 유관순열사기념관(28)에서 유관순 열사 추모제가 열린다. 내년부터는 망우리공원에서도 추모제가 열려야 할 것 같다.

-경향신문, 2019.09.28.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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