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초상화 신문에서 퍼온 역사

1920411일자 동아일보는 단군 영정을 현상 공모하는 사고를 게재했다. 신문은 단군은 우리 민족의 종조(宗祖)이고 역사적으로 가장 신성한 위인이어서 충심으로 봉안하기 위함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그러나 공모에서 당선작은 나오지 않았다. 2년이 지난 19221122(음력 103) 개천절, 동아일보는 단군의 초상화를 내보냈다. 대종교가 봉안해온 단군 천진(天眞)’이었다. 이 영정은 단군 초상의 기준이 됐다. 1949년 제헌 국회는 이를 국가 단군 영정으로 공인했다.

1978년 문화공보부는 사단법인 현정회가 홍숙호 화백에게 의뢰해 제작한 단군 초상화를 정부 표준 영정으로 지정했다. 2년 전 대종교 총본사에서 제작한 단군 천진을 단군의 표준 성상으로 승인해놓고 또다시 표준 영정을 지정한 것이다. 정부가 사실상 두 개의 단군 표준 영정을 인정한 셈이다. 현재 정부 지정 표준영정 목록(98)에는 현정회가 제작한 단군 초상만 올라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풀과 나뭇잎 복장을 한 대종교의 단군 초상화를 표준 영정으로 아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단군 영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단군 초상의 역사는 짧지 않다. 고려왕조는 단군을 모시는 성제사(聖帝祠)를 두었다. <세종실록> 11년조에는 평양에 단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을 세웠다는 기록이 전한다. 이들 사당에 단군 영정이 봉안됐을 가능성이 있다. 1910년 발간된 <신궁건축지>에는 단군의 목판본 초상이 실려 있다. 한말 화가 심전 안중식이 단군의 초상화를 그렸다는 얘기도 전한다. 국립부여박물관에는 1922년 이전 그려진 단군 초상화가 소장돼 있다. 올해 개천절을 앞두고는 광서 9(1883)’ 화기(畵記)가 쓰인 단군 초상화가 공개됐다. 화기가 맞다면 가장 오래된 단군 영정이다.

신화 속 인물인 단군의 초상화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그러나 상상의 공동체가 민족을 만들어가듯, 민족의 무의식 속에 전승되어온 국조 단군은 그 자체가 역사다. 개천절은 단군이 나라를 세운 날이어서 기념하는 게 아니다. 국난 속에서 민족을 결집시킨 단군의 정신과 의미를 기억하자는 것이다. 단군 초상화는 민족 공동체를 기억하고 전승하게 하는 상징이다.

-경향신문, 2019.10.03.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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